타락한 세상을 가로질러 진정한 삶의 가치를 추구하고 드러낸다는 소설적 명제는 무너지고 있는가? 아니다. 소설을 일회용 소모품으로 치부해버리려는 음험한 힘의 작용 속에서, 그러나 여기, 그것을 진실한 소통 공간으로 일구려는 치열한 작가들이 있으며, 또 그 공간을 함께 나누고 지키려는 참된 독자들이 있다. '문학과지성 소설 명작선'은 그런 작가와 독자들이 시간의 벽을 뛰어넘어 함께 만나 이루어낸, 우리 사회의 가장 깊은 곳에 생명의 길을 터주는 마르지 않는 언어의 샘이다. <마당깊은 집>은 가족 서사와 사회역사적 서사를 교묘하게 결합시킨 작품이다. 문제적 개인사 내지 가족사가 민족사의 테두리 안에서 의미의 마당을 효율적으로 마련한다. 이소설이 단순한 가정소설이나 세태 풍속소설을 넘어설 수 있었던 이유도 바로 여기서 찾아진다. 김원일 문학의 핵심적 기저 구조를 담고 있는 <마당깊은 집>은 난세의 성장소설이다.